Carmignola Achaive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연 뒤 무지막지하게 길게 늘어선 사인 행렬에 동참했단다. "가까이서 얼굴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가 그 이유였다. 첫 한국 공연 한방으로 한국 여성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 미중년. 지난 달 인터뷰에서 프로그램좀 설명해 달라 했더니 자기는 2부에 사계만 연주할 거라며 까칠하게 설명을 거부했던 아저씨. 그런데 어인 일인지 1부 마지막 협주곡에 떡하니 등장했다. 사진 속 이미지와 달리 머리가 많이 하얘져서 다소 놀랐지만 정말 호남형이었다. 연주도 꼭 생긴대로 했다는. 함께 본 또 다른 후배는 그의 제스처에 "마치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카르미뇰라가 등장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음질은 확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빛나는 비발디가 있었던가 싶다. 예술의전당의 엄청난 규모에 주눅이 들어 조심스러웠던 지금까지의 거트현 악기 주자들과 달리 당차게 공간을 제압한 카르미뇰라는 저돌적으로, 공격적으로 비발디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거트현이 맞는지 의문이 갈만큼 소리가 무척이나 강렬하고 화려하고 또 다채로웠는데, "이게 사계?" 인가 싶을 정도로 장식음과 임프로비제이션도 엄청났다. 특히 겨울 2악장 연주에 대해 또 다른 옆자리에 앉았던 지인께서는 "원전연주계의 조영남"이라고 부를 정도("나는 맘대로 연주할 테니 알아서 반주하거라"). 하프시코드 주자와 그가 번갈아가며 한 번씩 악보를 실수로 잘못 들고 나오는 바람에 등퇴장을 반복하고, 게다가  중간박수가 나올 정도로 어수선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보잉 한 번에 객석은 제압당했다.

화려한 연주와 달리 카르미뇰라의 얼굴은 상당히 까칠하고 표정이 굳어져 있었는데, "본전 정신"에 투철한 객석의 기립을 마다않는 열광적인 박수(이날 본 프로그램은 겨우 1시간 40분밖에 되지 않았다)에 점점 얼굴이 풀어지더니 비발디 협주곡으로만 앙코르 곡을 세 개나 풀어주시어 결국 "3부"가 가장 엑설런트한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이 아저씨의 까칠모드는 지난달 인터뷰때도 암시가 되었는데, 영어로 보낸 질문지에 이탈리아 어로 답을 보내주셨다는. 마감이 촉박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결국 카미노에서 사귀어둔 영국에 사는 이탈리아 친구에게 긴급 전화를 걸어 얌전히 회사업무 보고 있는 그 친구를 달달 볶아 30분만에 영어 번역을 받아내 다시 한글로 재번역했다(착하고 사려깊은 이 친구는 심지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누구인지 내가 모를까봐 상세하게 설명해서 첨부해 주었다. ㅠ.ㅠ)

오늘은 레빈선생의 모차르트 임프로비제이션 강의로 시작해 카르미뇰라의 임프로비제이션으로 끝난, 그야말로 임프로비제이셔널했던 하루. 얌전히 강의 듣고 내일(아니 이제 오늘인가?) 있을 서양연극사 발표 준비를 하려고 했건만 한양대에서 뜻하지 않게 광화문으로 향하게 되었고, 듣고자 했던 레빈의 오후 강의를 포기하고 바로 예술의전당으로 직행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괜찮은 선택이었다. 엄청 식사를 안해주시는 후배님 덕분에 혼자서 2인분을 먹다시피한 점심 때의 스파게티 땜에 밤늦게까지 속이 부대꼈던 것만 빼고는.

 

커버스토리

‘사계’와 더불어 환생한 21세기 비발디,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파비오 비온디와 함께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쌍두마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줄리아노 카르미뇰라가 마침내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비발디의 ‘사계’를 가지고 첫 내한공연을 가진다. 최근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모차르트 협주곡을 녹음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에 오르고 있는 그의 해석은 실은 현대악기가 가진 낭만주의적 감수성과 바로크의 본질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시작된 고음악 운동은 처음에는 스위스와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북유럽 출신의 원전악기 연주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레퍼토리가 바흐와 헨델을 넘어서 비발디를 비롯한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확장되면서, 그 판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국어에 대해 가지게 되는 자부심과 자신감처럼, 이탈리아 연주가들은 자국의 작곡가에 대해 남다른 이해력과 해석을 과시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 쌍두마차 중 한 명이 파비오 비온디라면, 다른 하나는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성장과정은 어느 정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20세기가 막을 내릴 즈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마이너 레이블에서 ‘사계’를 녹음하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그 여세를 몰아 메이저 음반사의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메이저 음반사로 전속을 옮기면서 ‘사계’를 다시 한 번 녹음한 것도 그들의 공통점이다(사실 대부분의 이탈리아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의 경력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사계’가 터닝 포인트로 자리 잡고 있다).

카운터 파트너라 할 수 있는 비온디와의 연주로 비교하자면, 카르미뇰라의 ‘사계’(디복스 구반/유쾌한 마르카 합주단 협연)는 물리적으로는 템포가 빠르다. 그럼에도 비온디의 연주가 훨씬 자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들리는 이유는 음색과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카르미뇰라의 독주는 선이 깔끔하고 고우면서도 풍부한 소리를 발산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르미뇰라의 ‘사계’를 비온디의 현대적인 시도와 이 무지치의 후기낭만적인 연주 사이에 존재하는 가교와 같은 연주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잖다.

카르미뇰라의 ‘사계’는 2001년 지휘자 겸 하프시코드 주자인 안드레아 마르콘이 이끄는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만나면서 한 차원 높은 성장을 기록한다(소니 신반). 실상 모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카르미뇰라를 바로크 바이올린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 거장 안드레아 마르콘이었던 만큼, 이 음반에는 카르미뇰라의 해석 뿐 아니라 마르콘의 입김이 동등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의견 충돌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바이올린 솔로에 착착 감기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신의 경지에 가까운 호흡을 보여준다(여기에는 또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일부 단원이 카르미뇰라의 제자들이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약 30년 전 카르미뇰라를 발굴한 마르콘은 “그가 비발디를 연주할 때마다 그의 손가락과 그의 음색과 그의 성격 그 모든 것이 비발디를 위해 태어났다는 착각에 빠진다”라고 말할 만큼 카르미뇰라의 비발디 연주에 남다른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처럼 비발디에 이르러 이처럼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들이 고음악의 주도권을 획득하게 된 경의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마르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탈리아 음악을 위해서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이탈리아 앙상블은 비발디에 관한 한 전혀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앙상블은 모험적이고 더욱 자유롭게 비발디를 연주한다. 반면 북유럽 연주가들은 기교상으로나 해석상의 위험을 충분히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마치 바흐나 헨델의 작품을 연주하듯 비발디를 연주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발디는 그보다 훨씬 다채로운 존재이다. 그 음악은 감정적이고(Affetto/emotion) 또 인상적(Effetto, impression)이다. 이 두 단어는 이탈리아 옛 음악을 연주할 때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나만 해도 이탈리아 음악을 연주할 때면 매던 다른 아이디어와 해석을 시도한다. 스트라빈스키는 비발디가 똑같은 음악을 5백 번이나 반복해서 작곡했다며 비발디의 협주곡을 폄하했지만, 실은 비발디는 5백 개가 넘는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보는 게 옳다. 비발디의 ‘사계’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녹음된 레코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연주가들이 새로운 연주와 녹음을 시도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즉 매번 새로운 방향과 해석을 추구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비발디 작품이 가진 생명이라 할 수 있다.”

비발디 탄생 330주년을 기념하여 시작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세계 순례에, 안타깝게도 안드레아 마르콘은 동반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가 비발디의 후예로 추앙하는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사계’를 들을 수 있다. 마르콘은 개성적인 표현과 새로운 해석이야 말로 비발디 연주의 정수라 했지만,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카르미뇰라의 성격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다분히 겸손하고 신중했다. 어느 쪽이 진짜 카르미뇰라의 모습인지는, 오는 내한공연을 통해 실제로 확인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비발디의 작품을 연주하거나 해석할 때 가장 역점을 두는 요소는 무엇인가?


“나는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할 뿐이다. 또 비발디가 이런 경우 어떻게 표현했을까를 떠올린다. 나는 단지 작곡가의 의도를 그대로 충실하게 실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에 불과하다. 그것이 연주가의 의무이다. 연주가가 음악 앞으로 나서서는 안 될 노릇이다.”


-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당신은 본래 모던 악기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바로크 악기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가?


“나는 지금도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니다. 나는 애초에 18세기 레퍼토리들에 관심이 있어서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스타일에 있어 미학적인 측면에서 특히 그 사조를 아직도 사랑한다. 내가 바로크 세계에 빠져든 건 1990년대 초에 안드레아 마르콘을 만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이것은 음악가로서의 내 인생을 통째로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바로크 연주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악기를 튜닝해서 연주한다. 당신의 악기는 어떠한가? 어떤 악기인지 소개해 달라.


“나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요가 보유했던 스트라디바리를 가지고 연주한다. 이 악기는 카리스보 재단(볼로냐 저축은행)에서 내게 기증해 준 것이다. 따스하면서도 밀도 높은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최상의 컨디션이다. 이 환상적인 악기로 연주를 하는 것은 내게 위대한 특권이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는 아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언제 그들과 처음 만났는가? 다른 바로크 앙상블과 비교할 때 차별성이 있다면?


“우리는 2001년 소니 레이블에서 음반을 녹음하면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 음반은 진실한 우정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녹음이다. 녹음에 참여한 몇몇 바이올린 연주가들은 베니스 음악원에서 내게 배운 제자들이다. 그 연주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연주가 상호간의 멋진 교감이 존재한다.”


-최근 당신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모차르트를 녹음했다. 내 생각에 폴리니로서는 처음으로 원전 연주 앙상블과 함께 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언제 처음 그와 만났는지, 녹음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나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의 우정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준결승에 올랐을 때, 객석에 있던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당시 음악감독이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것을 계기로 몇 달 뒤 나는 아바도의 초청을 받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와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당시 그 연주회에는 마우리치오 폴리니도 참여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그러니까 2004년에 우리는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재회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우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가 가진 음악에 대한 특유의 겸손함으로 인해 그는 이미 음악사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장이다. 이번 음반을 녹음하면서도 우리 사이에는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그는 내 해석을 참을성 있게 경청해 주었다. 그래서 최상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음악을 연주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다.


“이 복잡다단하고 미쳐가고 있는 세상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 연주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고통과 번민을 잠시나마 잊고 자신마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 훨훨 날아갈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한다.”


글/노승림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2008년 10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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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rmignola, the Four Seasons 2008/12/22 01:45 #

    Carmignola Strings, specially the violin..그 떨림의 아름다움 원전음악이라느니 전문적인 사항은 전혀 모른다만동영상으로 전해들은 음악은 그날 표를 구입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 날 연주회에서 조금은 실망했더랬다너무나 저돌적임 자체를 기대해서였는지 그 음악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그렇지만 어쨌든 사계 음반 하나 사들고 나올만큼은 좋았더랬다 한참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구석에 있었는데몇 주 전에 뜯어서......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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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신바람 2008/10/30 02:25 # 답글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카르미뇰라는 3년 전에 봤었는데 그때와 너무 인상이 달라져서 놀랐습니다. 그때는 머리도 까맣고 이미지가 거미인간; 같았는데...
  • alephia 2008/10/30 10:05 #

    네. 오랜만에 뵈었네요 교수님^^ 어제 공연 좋았지요? 카르미뇰라가 3년 전에는 염색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ㅋㅋ
  • 완다 2008/10/30 18:20 # 삭제 답글

    언니!
    그렇게 까칠한 사람인줄 상상도 못했는데..
    사인회 의자에 앉아있던 카르미뇰라는 무척 친절하고 세심한
    미.중.년 이었답니다~
    오호호호

    오늘도 내일도 또 연주회장에서 바쁘시겠네요.
    일요일에 또 봐요. ^^
  • alephia 2008/10/30 23:15 #

    ㅋ. 진창이 디카로 찍은 사진 보여줬는데 얼굴이 한결 풀어져 계시더만. 좋았겠다. ㅠ.ㅠ 만나서 반가웠삼. 일욜날 또 봅세^^
  • ameling 2008/10/30 22:59 # 삭제 답글

    Frau alephia.

    제 몫까지 공연 잘 보고 후기 계속 올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니혼쿡에 있는 관계로.
  • alephia 2008/10/30 23:15 #

    모두 고차원의 염장을 질러주시는군요. 켁
  • 엘프스톤 2008/11/04 22:03 # 답글

    아하하하..(도망감)
  • alephia 2008/11/06 14:20 #

    도망가면 다냐..?-_-
  • 사바세계 2008/12/22 01:32 # 답글

    아 그가 그렇게 까칠한 사람이었군요. 그날 연주회에서는 상당히 부드러워보이던데.

    사실 전 그날 연주때에는 기대만큼 저돌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약간 실망까지 해버렸더랬지요. 물론 이거야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었고 지금 다시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 alephia 2008/12/22 09:55 #

    실제로 본 게 본 모습일 수 있겠죠. 저는 그저 서면으로 접촉했을 뿐이니까요. 바로크 악기로 저돌적이기란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음반으로 가장 덕을 본 장르가 역시 원전연주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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