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이 미뤄져 시간이나 때우고자 찾아갔던 교보에 지름신이 강림했다. 예정했던 서적 칸은 눈길도 주지 못했고 오로지 <25%세일>이란 문구에 현혹되어 엄청나게 '지르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대박 중의 대박. 마침내 할러웨이가 무반주를 녹음했다!!!!!!!!
그가 (선생을 잘 둔 덕분에) 바이올린을 배우던 시절 최초로 접했던 악보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자필악보였으며, 그를 원전연주의 세계로 이끌었던 연주가 다름아닌 쿠이켄의 동곡 연주였다. 그렇게 바로크 바이올린에 입문한 할러웨이였건만, 그는 비버에 그의 스승 슈멜처에, 코렐리에, 북스테후데에, 바흐의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까지 손을 대면서도 정작 이 작품 녹음만큼은 미루고 미루고 미뤄왔다. 한참 그에게 미쳐 있을 때는 대체 언제 녹음하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게 하며 사람 애간장을 태우더니. 여튼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죽기 전에 녹음을 하여 감개무량일 따름이다.
나를 현혹시켰던 비버 미스테리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그의 바흐는 참으로 여백이 넘친다. 현란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와중에도 쉼표를 남겨둘 줄 아는 내공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다. 쿠이켄의 연주가 소박하면서도 촘촘하게 쌓아올린 꽉찬 건축물이라면, 할러웨이의 바흐는 높은 천정을 가진 매우 미니멀하고 모던한 건물이다. 적당한 곳에 적당한 장식을 하여 단조로움에서 탈피한 대신 남겨둔 여백은 듣는 이의 무한상상을 자연스럽게 자극한다. 내가 아는 한 이만큼 절제된 아름다움을 가진 샤콘느는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쿠이켄처럼 밀어붙이지 않는 데도, 베그처럼 쥐어짜지 않는데도 그 절제가 오히려 호흡곤란을 더욱 심하게 유발시킨다.
거금을 들여 같이 담아온 스카를라티며 라모며 몬테베르디며 보케리니들이 자기들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비닐 봉투 속에서 칭얼거리고 있건만, 할러웨이의 이 음반이 도통 나를 놔주지 않아 비닐봉투를 뜯지도 못하고 있다. 끄응. 지금에사 들여다보니 역시나 미개척 레퍼토리는 제로이다. 아무리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애를 써도 결국에 손이 가는 것은 같은 작곡가의 같은 작품에 같은 연주이다. 이놈의 극단적인 편애 성향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군.




덧글
intermezzo 2006/12/13 01:44 # 답글
같은 작곡가의 같은 작품에 같은 연주...그걸 "극단적인 편애 성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거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승큰kim 교수님 ㅎㅎㅎ
alephia 2006/12/13 09:57 # 답글
크학. 그 분은 어느 작곡가의 어느 작품도, 그 어느 연주가도 싫어하지 않지요. 도움만 된다면야. ㅋㅋㅋㅋ
jenn486 2008/02/07 06:33 # 삭제 답글
저희 교수님을 팬이시네용~~ 저에겐 꼰대인데..~ㅋㅋ
alephia 2008/02/07 13:28 # 답글
교수님이 Holloway 신가요? 아님 김승근 샘인가요? 후자라면, 저는 팬은 아니랍니다. ㅎㅎ